민서는 국내 최초 감성 코리빙 브랜드 ‘룸앤룸’의 기획자였다. 그녀가 만든 소개서 첫 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함께 산다는 건, 삶의 밀도를 나누는 일입니다.
문제는 민서가 누구와도 삶의 밀도를 나눠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혼자 사는 걸 사랑했고, 냉장고 칸을 공유하는 인간을 거의 문명 붕괴의 전조로 여겼다. 그런데 투자자 미팅에서 대표가 말했다.
“민서님, 이 공간이 진짜 관계를 만든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사용자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입주자 인터뷰 따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요. 더 진짜 같은 거요.”
대표의 눈빛이 불길했다. 아주 불길했다.
그렇게 민서는 자신이 기획한 코리빙 하우스 3층 B-07호에 입주했다. 직함은 기획팀장, 미션은 브랜드 신뢰도 확보, 비공식 목표는 연애 성공. 이보다 비인간적인 KPI가 있을까.
첫날 밤, 공용 주방에서는 웰컴 파티가 열렸다. 민서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들고 입주자들을 스캔했다. 개발자, 요가 강사, 독립출판 편집자, 매일 노트북에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 그리고 창가 쪽에서 고추참치 캔을 따고 있는 남자.
“저기요.” 민서가 다가갔다. “웰컴 파티에 고추참치는 좀…”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제일 공동체적인 음식 아닌가요. 다 같이 먹기 좋고.”
그의 이름은 지후였다. 직업은 UX 리서처. 코리빙에 입주한 이유는 ‘사람들이 왜 굳이 남과 살려고 하는지 관찰하려고’였다.
민서는 순간 경계했다. 동종업계 포식자다.
“저희 공간은 관찰 대상이 아니라 경험 대상이에요.”
“그럼 경험해보고 말할게요. 지금까진 냉장고 선반 라벨링이 너무 공격적이던데요.”
“그건 분쟁 예방 장치예요.”
“사랑도 예방하실 건가요?”
민서는 와인을 뿜을 뻔했다.
그날 밤, 민서는 입주자 전용 앱에 첫 기록을 남겼다.
Day 1. 연결 가능성 있음. 단, 피험자가 말이 많고 고추참치 냄새가 남.
그리고 세 줄 아래, 아무도 보지 않는 개인 메모에 이렇게 썼다.
정말 코리빙에서 연애가 될까요? 모르겠다. 근데 일단 내일 아침 공용 주방은 조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