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경의선 숲길 끝자락, 담장 너머로 보라색 라일락이 흐드러진 이층 주택 상가. 그곳엔 파스텔톤 간판의 [연애 전문 / 1:1 심층 상담 / 로그인]이 있다.
얼핏 보면 힙한 타로 카페 같지만, 이곳의 주인장 '한결'은 진짜 신(神) 대신 죽은 여자친구와 24시간 로그인 상태인 '생계형 무당'이다.
1. 신내림 말고 '사랑 내림‘
2년 전, 한결의 연인이었던 '미소'는 연남동에서 데이트를 하러 오던 길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한결은 식음을 전폐하고 울다 지쳐 신당을 찾았다. 그녀를 한 번만 보게 해달라고. 그런데 웬걸, 신내림 굿판 도중 작두 대신 방울을 잡은 한결의 눈에 소주잔을 들고 멍하니 앉아 있는 미소가 보였다.
"야, 너 왜 거기서 울고 있냐? 못생기게."
그게 첫 마디였다. 남들에겐 오싹한 귀신이지만, 한결에겐 그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던 여자친구였다.
미소와 대화하고 싶어 무당의 길을 택한 한결. 미소는 성불도 안 하고 아예 한결의 점집에 상주하며 ‘영혼 정보원’ 역할을 자처했다.
1. 점집의 영업 비밀: '과속스캔들'식 티키타카
점집의 상담 스타일은 독특하다. 한결이 손님의 손을 잡고 고민을 듣는 척하면, 옆에 앉은 미소가 손님의 뒷조사(?)를 시작한다.
"도령님, 저 올해는 취직할 수 있을까요?"
답답한 표정의 취준생이 묻자, 미소가 그 청년의 어깨 위에 올라타 속삭인다.
"한결아, 얘 가방에 토익 수험표 있는데 점수가 400점대야. 공부는 안 하고 어제 새벽까지 게임 하더라. 손가락에 게임기 자국 있어!"
한결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부채를 펴며 호통을 친다.
"공부 안 하고 밤새 레이드 뛰는데 신령님이 합격증을 주겠니? 당장 PC방 끊고 영어 단어나 외워!"
청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복채를 두고 도망치듯 나간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한결과 미소는 하이파이브를 하려다 허공을 가른다.
"나이스 샷, 미소야! 오늘 저녁은 네가 좋아하는 꼼장어 냄새 맡으러 가자."
1. 라일락 향기와 '초코'의 마지막 인사
오후가 되자 따스한 햇살과 함께 라일락 향기가 통창으로 스며든다. 그때 강아지 유골함을 든 지은 씨가 들어온다.
"도령님... 우리 초코가 갑자기 떠나서 인사도 못 했어요. 저 때문에 죽은 것 같아서..."
지은 씨가 울먹이자 미소가 바닥을 가리키며 자지러진다.
"야! 한결아! 얘 여기 있어! 근데 초코 이 자식, 슬퍼하는 주인 발등에 침 흘리면서 자고 있어! 아까 밖에서 누가 붕어빵 들고 지나갔나 봐. 얘 전해줘. 누나 슬퍼하지 말고 그 눈물로 내 간식이나 사서 유기견 센터 보내달래. 자기는 여기서 배 터지게 먹고 있다고!"
한결은 지은 씨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초코가 그러네요. 누나 집 거실에 있는 '북어 트릿' 냄새가 라일락보다 좋았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고, 초코 몫까지 맛있는 거 먹으면서 행복해지랍니다."
지은 씨는 눈물을 닦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초코답네요, 정말."
1. 붕어빵 아저씨의 '황금 붕어' 태몽
마지막 손님은 사거리 붕어빵 아저씨다.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를 내밀며 로또 번호를 묻는다. 미소가 아저씨 주위를 돌더니 혀를 찼다.
"한결아, 이 아저씨 등 뒤에 웬 꼬마 귀신이 붕어빵 물고 매달려 있어. 아저씨랑 붕어빵처럼 똑같이 생겼는데? 이거 로또가 아니라 '손주'야!"
한결이 빙긋 웃는다.
"아저씨, 로또 사지 마세요. 이번 주에 따님한테 전화 올 겁니다. 황금 붕어가 로또가 아니라 손주였네요!"
그 순간 아저씨의 폰이 울리고, "아빠! 나 임신이래!" 하는 소리가 점집에 울려 퍼진다. 아저씨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나간다.
1. 에필로그: 보이지 않는 데이트
영업 종료 후, 한결은 테라스에 앉아 미소가 좋아하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둔다. 벚꽃 잎 하나가 미소의 잔 위에 툭 떨어진다.
"야, 최한결. 오늘 벌이 좀 괜찮더라? 내일은 저 앞 가게에서 예쁜 핀 좀 사줘. 내 머리에 꽂아주면... 뭐, 바닥에 떨어지겠지만."
"말 좀 예쁘게 해라. 핀은 무슨. 그냥 내가 내일 네가 좋아하던 파스타 사 먹는 거나 구경해."
"저게 진짜! 확 그냥 신당 뒤엎어버릴까 보다!"
한결은 웃으며 미소의 잔에 담긴 벚꽃 잎을 건져 올린다. 만질 수는 없지만, 라일락 향기 속에 그녀가 있음을 느낀다.
연남동의 밤이 두 사람의 투닥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따스하게 깊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