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트림 연트럴

by 로코서울 편집부

덕수는 연남동에 처음 와봤다.

사실 별로 오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회사 후배가 말했다.

“요즘 감도 잡으려면 연남 정도는 가봐야죠.”

감도? 덕수는 감도보다 길 찾기가 더 급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요즘 애들에게 뒤처져 보이긴 싫었다.

전날 밤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연남 카페’, ‘연남 디저트’, ‘연남 감성 골목’을 검색했고, 무려 게시물 47개를 저장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검은색 백팩 하나를 메고 연남동에 입성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 ‘파롤앤랑그’였다.

임시 휴무.

두 번째 카페는 브레이크 타임.

세 번째 소품샵은 이전.

네 번째 맛집 ‘사루카메’는 웨이팅 74팀.

“뭐야? 나만 시간선 잘못 탔나?”

덕수는 지도 앱을 붙잡고 골목을 돌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분명 지도는 “도착했습니다”라고 했는데, 눈앞에는 낡은 전봇대와 까치 한 마리뿐이었다. 까치는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덕수는 괜히 졌다.

그때였다.

질척.

발밑에서 인생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덕수는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보지 말 걸 그랬다.

작은 강아지가 남긴 도시의 비극이 그의 운동화 밑창에 선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왜 나한테…”

하지만 재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아주 급했다. 철학적으로 급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카페로 뛰어 들어갔다.

“혹시 화장실만…”

“손님 전용입니다.”

덕수는 바로 메뉴판을 봤다.

아메리카노 5,800원.

비쌌다. 하지만 존엄은 더 비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결제하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없었다.

휴대폰이 없었다.

카드도 폰 케이스 안에 있었다.

덕수는 카운터 앞에서 인간에서 조형물로 변했다. 뒤에 있던 커플이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 괜찮아?”

아니었다.

전혀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덕수는 죄송하다는 말을 다섯 번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연남동을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비슷한 골목을 몇 번이나 지났다.

연트럴파크 중심에서 도대체 어느 쪽으로 향해야 이 참극을 막을 수 있을까. 그의 두뇌는 팽팽 회전했지만 소득은 없었다.

인생이 원심분리 될 것만 같았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안쪽. 유리문 너머. 앞치마를 한 단발의 알바생이었다.

그녀는 처음엔 그가 손님인 줄 알았다. 두 번째 지나갈 때는 길을 잃은 줄 알았다. 세 번째 지나갈 때는 걱정됐다. 네 번째 지나갈 때는 확신했다.

저 사람, 제 정신은 아닌 것 같다.

덕수는 결국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눈은 비어 있었고, 운동화에서는 아직도 희미한 패배의 냄새가 올라왔다.

그때, 문이 열렸다.

딸랑.

차가운 공기와 달콤한 우유 냄새가 흘러나왔다. 알바생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혹시…”

덕수는 고개를 들었다.

순간 시간이 느려졌다.

햇빛. 바닐라 향. 앞치마 끈. 살짝 걱정스러운 눈빛.

덕수는 생각했다.

망했다. 나 지금 반한 것 같다. 이 타이밍에?

“괜찮으세요?”

그는 대답하려 했다. 멋있게. 담담하게. 어른 남자답게.

하지만 나온 말은 이거였다.

“화장실… 제발요…”

알바생은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거의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화장실은 직원 전용인데…”

덕수의 첫사랑은 시작 3초 만에 브레이크 타임에 들어갔다.

그때, 알바생이 곤란한듯 입을 뗐다.

“혹시 너무 급하시면 여기 키…”

덕수는 무교지만 그 순간 후광이 보였다.

여신이다. 신이시여.

감사하다는 말도 못한채 황급히 키를 들고는 건물 옆 화장실로 뛰어갔다.

철컥

“어…?”

키는 들어갔다.

문고리는 안 돌아갔다.

맙소사.

(다음 화에 계속)

연트럴파크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연남동#연트럴파크#카페#코미디#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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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1익스트림 연트럴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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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네를 짧은 이야기와 산책 동선으로 엮는 로코서울 편집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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